제 1기 (1540-1773) 시작과 성장 (로마를 중심으로 2500개의 단위 공동체로 성장)
1540년 세계 CLC의 기원, 성이냐시오와 그의 동지들의 주도 하에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평신도 공동체가 만들어짐. 여러가지 이름을 가진 평신도 단체로 처음 시작되었을 때, 세계적으로 연계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회와의 밀접한 관계이었고 그것은 예정되었고 또 사실이었다.
1551년 예수회 루니스(Jean Leunis) 신부가 로마대학의 학생들을 중심(성모회)으로 사도직 시작.
"초기 공동체는 규칙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삶을 가지고 시작했다."  “To do a apostolic work”
1574년 로마대학 성모회(Sodalities of our Lady) 규칙 제정.
인간 존재의 모든 양식이 하나의 그리스도인의 생활 양식으로 통합 지향 (신앙과 삶의 통합), 그리스도의 삶과 과학적인 양성의 통합을 지향함이 명확하게 기술되었다.

매일, 공동체원들은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함께 기도를 드리고,
함께 Office of Our Lady(성모 공경기도)의 일부를 노래로 드리고,
함께 의식 성찰을 하고,
함께 내일을 위한 기도를 준비했다.
지도자들은 모임에서 모든 회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데에 참여하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1584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12월 5일 Omnipotentis Dei 를 통해 성모회를 공식적으로 승인. 창립자 루니스 신부 사망.
Roman College의 교우회 - PRIMARIA (primary group)에게 같은 목적으로 세워진 다른 그룹들을 가입시킬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므로서 널리 퍼져 있던 모든 그룹을 연계시켰다.
1587년 모두에게 적용되는 첫 통상 규칙(Common Rules)이 나왔다 (Claudio Aquaviva,SJ.총장 재임시).
1773년 2500개의 단위 공동체로 성장

제2기 참된 정신의 쇠퇴 ( 1773 -1948)  (80,000 개의 공동체로 성모회의 급격한 팽창)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 당시, 7월 21일 예수회 활동 정지 명령, 20,000 예수회원 집으로 돌아감, 총장을 구금됨. 11월 14일 다행이 성모회의 활동은 지속할 수 있다는 칙령 발표.
Sodality는 주교의 관할권 아래 들어가다.
성모회의 급격한 팽창이 이루어졌는데 교회의 일상적인 활동이 되어버림.
1814년 예수회 복권이 이루어졌으나, 성모회가 이미 신심단체로 성격이 바뀌고 있었다.
1854년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교리로 반포된 후, 대중적 성모 신심단체로 성모회가 교구에 퍼짐
이냐시오 영성과 본래의 정신에서 멀어짐

20세기초 - 성모회(Sodalities of Our Lady) 서로간에 연결이나 교환이 더 깊어졌다.
1922년 예수회 장상 레도초스키 (Ledochowski) 신부 19개국의 40여명의 성모회 관계자 회의 소집
로마에 국제 성모회 본부 사무국 (service center) 설립
 
1925년 세계 사무국이 로마에 세워진후 세계적인 정기 간행물 (현재의 PROGRESSIO)이 몇개 국어로 나왔다.
1947년 전체 성모회 중 이냐시오 영성과 관련된 성모회는 5%에 머묾

제3기 쇄신과 재창립 (1948-1967)  (이냐시언 신원의 회복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1948년 비오 12세 2개의 칙령 Apostolic Constitution “Bis Saeculari”를 반포 : 성모회가 '가톨릭 활동 중 뛰어나고 독특한 운동'이라고 선언하시고 세계적 운동으로 특별히 평가했고 발전하는 세계적 연대를 격려하였다. 또한 영신수련의 정신 아래 이냐시언의 특성으로 돌아갈 것. 긴급한 과제로서 성모회 본래의 정신으로 개혁하고 쇄신하라고 촉구함.

(Bis Saeculari의 부분중.. 특히 사회 사도직에 대한 강조)
The Sodalities of Our Lady duly affiliated to the Prima Primaria… are religious associations established and constituted by the Church
Formation of Members
Sodalities of Our Lady must, therefore, give their members… that will make them capable of being… examples of Christian living and apostolic zeal
Apostolic End, Cooperation
“Among their primary ends, Sodalities include every form of the apostolate, particularly the social apostolate, since the apostolic work of spreading the Kingdom of Christ and defending the rights of the Church has been mandated to Sodalities by the Ecclesiastical Hierarchy itself
1950년 April 15, 예수회 장상 얀센 (Jansen) 신부 40개국의 71여명의 성모회 관계자 회의 소집 /비오 12세의 권고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논의
1951년 성모회 안에서 영신수련 피정 부활
1953년 Paulussen신부의 노력과 지도를 통해,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서 성모회 세계 연맹 창설을 위한 초안 제출, 세계 연맹 결성, 교황 승인
"현대의 사도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모회가 우리에게 얼마나귀한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성모회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알 것입니다"
1954년 제 1차 성모회 세계 연맹 로마 총회 개최, 교황 비오 12세 - 조셉 고리나 (Joseph Gawlina)
대주교를 세계연맹 영성 지도 신부 임명
1959년 제 2차 성모회 세계 연맹 뉴욕 (Newark) 총회 개최
1964년 새로운 통칙 제정 준비, 제 3차 성모회 세계 연맹 봄베이 총회에 상정
바티칸 제2차 공의회가 열림에 따라서 결정 유보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 - 르네 오데 주교를 세계 연맹 영성 지도신부로 임명
1967년 바티칸 제2 공의회 참여,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논의를 함. 새로운 통칙 초안 완성.
제 4차 로마 세계 총회에 38개국 140명의 참석자들이 투표에 참여.역사상 최초로 공동체 자체적으로 통칙과 정관 제정.

"최근에 발표된 통칙을 보게 되면 누구나 성모회에서 이런 통칙을 만들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문서의 외적인 형태나 언어 뿐만 아니라 특히 그 정신이 기존에 알려진성모회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스타일의 쇄신이 여기에 일어났습니다"

Fr. Pedro Arrupe 당시 예수회 총장은 새로운 공동체의 지도 체제를 평신도들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으며, 예수회는 교회의 권위, 위상을 대표한다는 특정적인 역활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영감과 활기를 북돋아주는 원천으로서 그 소임을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한 직접 지도적인 역활은 지양한다고 밝히셨습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쇄신해 가는데 성모회라는 기존의 명칭이 적절하지 않다는 식별. 성모회를 그리스도 생활 공동체 (Christian Life Community)개명 재창립 되었고 새 정관을 승인했다. 아직 세계적 연맹이지는 않았지만 정관은 공동체에서, 세계적 교회와 모든 인류에 봉사하는 공동체에서 강하게 숨쉬게 되었다.

제 4기 2차 쇄신 (1967-1979)
1970년 제5차 산토 도밍고 세계 CLC 총회
세계 CLC 지도자들은 각 대륙으로 많은 여행을 시작했다. 세계 센터로 혹은 서로 다른 국가의 CLC 회원들 사이에서 장기간의 교류는 하나의 CLC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감각을 발생시켰다.
1973년 제6차 아우스부르그 세계총회 : 자유롭도록 부르심
'CLC - 모든 사람의 해방을 돕고자 하는 공동체' 주제를 가진, 새로운 형태가 도입된 총회로 피정과 양성 과정이 준비됨.

30개 국가에서 온 105명의 CLC 리더들이 모인 첫 국제 CLC Formation (양성) 코스는 삶의 경험에서 이냐시오 영성적인 근원에 하나임을 깊이 느끼게 했다. 그후 많은 국제 또는 지역 코스는 이런 공감을 더 깊게 했고 더 많은 CLC 회원을 포괄하도록 넓혀졌다. 모든 현안 (지금 12개)에 대해 세계 연맹의 해당 그룹들은 거의 모든 국가의 회원들에게 함께 일하는 세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세계 CLC 회의에 참석했던 모두는 세계 공동체의 일부분이라는 자각을 갖게 되었다. 부유하거나 가난하던, 회의나 양성 코스에서 모든 국가에서의 회원들의 참여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상당의 결속 자금은 이미 CLC가 연맹보다는 하나의 공동체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표식이었다.
1976년 제7차 마닐라 세계총회: 가난으로의 부르심 '보다 나은 봉사를 위한 그리스도의가난'
이 총회에서는 세가지 양성과정이 결합되어 있었다.

제 5기 (1979  현재)
1979년 제8차 로마 세계총회 : at the service of One World
로마의 세계 CLC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세계 공동체”라는 주제를 채택했는데, 각 공동체에서 주의깊은 식별 후에 대표들의 국가 연맹은 “세계 공동체가 되기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찬성-23, 반대-7 결석-6 이라는 표결로서 대답하였다. 그것은 명확한 다수, 거의 2/3 의 찬성이었으나 아직 확고한 일치는 아니었다.
1982년 제9차 프로비던스 세계총회 :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명에서 단일한세계공동체로서의 도전”
the challenge to be one World Community on mission to bring about justice
다시 심각한 식별 후에 “지금 우리는 하나의 세계 공동체로 불리움을 받았다고 느끼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찬성-37, 반대-0, 결석-2 라고 대표들의 국가 연맹은 표결했다. 압도적인 일치에 의해 세계 CLC 연맹은 세계 Christian Life Community가 되었다.
1986년 제10차 로욜라 세계총회 : "복음사명의 모범이신 마리아"
seeing Mary as model of our mission, being asked to do "whatever Christ tells us"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무엇이든지 하고자하는 일들이 미션에 모범으로써 성모님 보기
1990년 제11차 과달라아라 세계총회:"하느님 나라에 봉사하고, 가서 열매를 맺으라."
"at the service of the Kingdom, to go out and bear fruit"
세계 CLC 연맹에서 단일한 세계 CLC로 성격변화. 개정 통칙 상정, 인준
1994년 제12차 홍콩 세계 총회 : "복음 사명을 받은 공동체"
“I have come to bring fire to the earth, and how I wish it were blazing already!"
우리 세계의 문제와 시급한 과제를 식별하기 위한 분과모임
1998년 제13차 이타이치 세계 총회 :
"CLC - 오늘날 세상에 보내진 성령께서 쓰신 그리스도의 편지"
"CLC, a letter from Christ, written by the Spirit, sent to today's world."
세계 CLC 공동 사명 확인 : 그리스도와 사회 현실, 그리스도와 문화,
일상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
2003년 제 14차 나이로비 세계총회: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한 몸의 지체들”
“Sent by Christ, members of one body”
2008년 제 15차 파티마 세계 총회 : 사도적 지체로서의 여정
2013년

제 16차 레바논 총회 : 우리의 뿌리 에서 프런티어로

2018년 제 17차 브에노스 아이레스 총회 : CLC,  교회와 세상의 선물